구기정 개인전 《Route 0》 전시 비평글
비평 : 이수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인공적인 풍경/자연스런 알아차림



2021년 구기정의 작품 <초과된 풍경>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초과된 풍경>은 우리가 잘 보지 못하던 자연 풍경을 눈 앞에 매우 생생하게 제시했다. 작가가 다루는 풍경은 숲이나 길가를 걷다 쉬이 만나는 흙 바닥이지만 이 흙 바닥은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고 무수한 벌레들의 시체가 쌓여 같이 썩어가는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격전지다. 이들의 죽음은 곧 누군가의 양분이 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평소에 눈길을 잘 주지 않던 이 토양에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어 생생하게 기록하는 순간, 제인 베넷이 말하는 비인간적 물질의 생기와 정동이 꿈틀거리는 존재가 드러난다. 작가는 이 정동의 꿈틀거림을 발견하여 확대하고, 3D 가상공간에서 합성하여 여러 지층으로 분해하기도 하고 그 속을 뚫고 통과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교란한다. 이렇게 우리의 인식 위로 끄집어 올려진 평범한 자연은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도 이러한 정동이 이미지에서 그치지 않도록 실제 흙이나 나뭇가지들과 같이 배치하기도 하고, 이미지들을 설치와 뒤섞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설치의 방식에서 항상 우선하는 것은 실제가 아닌 이미지다. 이미지들은 사각의 강력한 프레임과 함께 우뚝 서서 등장하고 매우 강력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의 대상이었던 이끼와 흙과 나뭇가지보다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더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고 마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지가 대상의 현전을 압도해버리고 오히려 대상과의 관계를 역전시켜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초과된 풍경」 2021, 피크닉 설치

같은 해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전시했던 <유명한 풍경>은 세 가지의 레이어 안에서 작동하는 이미지들 간의 관계와 그 관계들의 재설정 과정을 보여주었다. 같이 협업했던 엘트라바이가 생산한 자연의 풍경은 실제 자연물을 그대로 가져와 연출한 것이다. 토대처럼 보이는 바닥에서 올라온 흙과 돌, 그리고 죽어버린 나뭇가지들은 블랙의 톤을 맞춰 이미 죽어버린, 생명을 빼앗긴 메마른 풍경을 연출한다. 그 위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친 자연의 이미지들은 거대한 사진들이다. 작가는 자연의 암석들, 흔히 생명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자연의 움직이지 않는 풍경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사진과 같은 평면을 차지하는 듯 아닌 듯, 무심하게 사진 이미지 위에 떠 있는 것은 무빙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스크린들이다. 이 모니터는 뒷면의 병풍에서 조각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조금씩 움직이며 사진의 평면을 보완한다. 그러나 움직이는 이미지들 즉 비디오는 돌의 평면을 확대하거나 움직이며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휘어지고 뒤틀린 파편으로 왜곡시켜 공간을 만들어낸다. 결국에 죽어있는 자연이 암석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토양에서 비디오로 옮겨져 정동의 생기를 얻어낸다.

「유명한 풍경」 2021, 아르코미술관 설치

구기정은 그 이듬해 〈Coagulation〉을 선보였다. “응고”라는 뜻을 가진 이 작품은 관람객과의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연출하며 관객들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이르렀다. 이 작품은 둥그런 잔디밭을 전시장 안에 깔고 그 위에 반원의 조형물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걸터앉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실존하는 자연의 이미지인지 아니면 디지털로 창작한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고해상도 카메라, 매크로 렌즈, 여기에 3D로 렌더링하며 왜곡한 비디오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과 머뭇거림을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세밀한 관찰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 스크린이 뒤에서 빛을 투사하는 방식의 리어 스크린임을 알고 있다. 모니터의 육중한 물질성이 아니라 빛의 가벼움과 덧없음으로 전해지는 이미지들은 환각에 가까운 어지러움을 만들어낸다. 이 어지러움은 이미지들의 미세하고 세밀한 움직임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관객들이 지금 딛고 있는 진짜 자연, 잔디와 우리의 신체 그리고 신체가 끊임없이 이미지를 지각하며 수용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데서 오는 것일 수 있다.

「Coagulation」 2022, Hall1 설치

이러한 모호함의 전략은 2024년 서호미술관에서 새로운 작업으로 선보이는 <시퀀스>라는 12점의 사진 연작에서도 계속된다. <초과된 풍경>이나 <유명한 풍경>이 산책하며 자연의 장면을 마주치는 것에서 시작했다면, <시퀀스>는 도심에서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는 공사장이나 건축물의 장면을 다루었다. 인류학자인 팀 잉골드도 도시에서 두 종류의 표면을 발견했다. 하나는 건물이 서 있고 둘려싸인 벽 안에서 시민들이 돌아다니는, 이 모든 일이 매끄럽고도 안정감 있게 이뤄지는 단단한 표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 틈새와 균열을 가로질러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생명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실타래처럼 읽힌 직물-구조의 표면이다.[1]건축중인 건물에 파란색의 비닐을 치고 안에서 공사가 이루어지는데 작가는 우연히 그 속을 들여다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유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골드만에 따르면 이는 아스팔트의 갈라진 틈새처럼 탈주선을 제공하는 유연한 시간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풍경들의 연속을 골라내고 나란히 전시하는 “시퀀스”를 구성했다. 관객들도 갈라진 천막 틈으로 들여다보는 조금씩 각을 달리하는 이미지들과 그래픽의 효과를 조금씩 다르게 입힌 여러 장면을 보게 된다. 관객들은 그 차이를 인식하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또 다른 이미지들을 만나고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또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같은 이미지를 미묘하게 다른 관점에서 연속으로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방식이고,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상상적인 “시퀀스”가 일어나고 이것이 명상과 비슷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신작 「시퀸스」 2024, 서호미술관 설치

<시퀀스> 중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벽에 설치한 듯한 <화면의 표면>은 사진의 2차원적인 이미지에 컴퓨터 그래픽의 3D툴을 사용하는 기술적 작업을 거쳐 제작한 작업이다. 건설 구조물 위의 파란 천막은 그래픽이나 비디오 작업에서 종종 사용되는 블루 스크린을 연상시킨다. 크로마키는 블루 스크린 위에서 인물이 움직이는 영상을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분리하여 다른 비디오에 옮겨서 합성하는 기술이다. 이때 피사체를 배경과 분리할 때 색조 차이가 큰 것이 유리하므로 배경으로 쓰이는 색상은 자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채도 높은 파랑색이다. 그런데 컴퓨터 윈도우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파란 화면 역시 블루 스크린(Blue Screen of Death, BSOD 정식 명칭은 Bug Check)이라고 부른다. 이 블루 스크린이 뜨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추며 재부팅을하는 수밖에 없다. 중의적인 뜻을 지닌 블루 스크린은 <화면의 표면>에서도 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인공적으로 시퍼런 색에 눈길을 잡아 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상의 사진인 듯 하지만 과도하게 채도가 높은 색상, 컴퓨터로 처리된 인공적 표면, 평면에서 보이는 입체적인 느낌 등, 관객들은 마주하고 있는 이미지가 그래픽인지 사진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 모호함 가운데 판단을 내리는 과정 역시 감상의 한 부분이며 이것 역시 크게 보아 명상의 과정이다. 여기에 새로운 작업으로 설치된 6채널의 사운드 작업인 <스펙트럼 필드>도 매우 직관적으로 미디어를 통한 명상을 이끌어낸다. 작가는 기계음과 싱잉볼 사운드를 섞고 여기에 산책하다 수집한 소리들을 덧입혀 실제로 산책하며 경험하는 소리 풍경을 연출했다. 사운드 매핑을 통해서 6채널의 사운드는 관객과 각각 다른 관계를 맺는다. 다양한 방향에서 들리는 소리를 좇아가다 보면 감각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곧 자연이 없는 도시에서도 대자연이 주는 명상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으로 연결된다.     


신작 「화면의 표면」 2024, 서호미술관 설치


신작 「스펙트럼 필드」 2024, 서호미술관 설치

작가가 〈Coagulation〉에서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신체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Contrology>에서 새로운 수련을 시작한다. 콘트롤로지 즉 조절학이라고 불리는 이론은 무언가를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라테스에서는 몸을 통해서 오히려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절학을 설명하고 있다. 바닥에서 위를 향하는 모양의 스텐레스 구조물은 앞쪽에 모니터 두 대를 연결한 것을 앞에 설치하여 마치 트래드밀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구조물은 트레드밀의 육중한 기계의 무게가 아니라 유연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동명의 퍼포먼스 비디오 <Contrology>에서 요가의 수련을 오래한 듯한 퍼포머가 등장하는데 그는 잠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듯 하더니 이내 곡선에 몸을 맞추어 자신의 수련을 시작한다. 그는 다리를 일자로 뻗어 뒷다리를 꺾어 올리기도 하고 바닥에 가슴을 대고 몸통을 머리 위로 구부려 기구의 일부가 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Contrology>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자 기구 위에서 스크린을 통해 이 비디오를 관람하게 된다. 필라테스가 현대인의 제한적인 몸의 움직임과 몸의 사용에서 오는 여러 신체적 불편함, 장애, 불균형 등을 극복하기 위한 치료법에서 유래한 것이듯이, 이 비디오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현대인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큐레이터 이지언의 말처럼 “기술-미디어와 몸의 불균형과 연쇄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경험'하는 방식의 유의미한 제스쳐Gesture”를 취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관객은 실제로 구조물에 앉아서도 두 화면을 볼 수 있는데 두 화면은 미묘하게 다른 영상을 보여주며 몰입감을 더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디오가 벽에 걸려 있는데, 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각도에서 찍은 비디오다. 구조물에서 볼 수 있는 비디오와 미묘하게 다른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같은 현상을 여러 번 보여주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Coagulation」 2022, Hall1 설치

구기정이 이번 서호 갤러리의 <프로젝트 루트>에서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미세한 다름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위해 발현해야 하는 감각이나 생각에 관한 것이다. 같은 풍경이 약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제시될 때, 사운드가 조금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노이즈를 낼 때, 두 개 모니터에서 서로 다른 영상이 살짝 틀어져서 다른 방식으로 재생될 때,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그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묘한 현기증과 함께 인식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알아차림”은 요가에서 말하는 인식 즉 자신과 주변을 의식하는 상태 혹은 자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주변과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실시간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내뿜는 미디어환경에서 즉각적으로 상황에 반응하기보다 분석하고 자각하는 균형 잡힌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구기정의 작품은 우리가 자연 속을 산책하는 동안 일어나는 명상의 작용이 가장 인공적이고 기술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전시 전경 『루트0』 2024, 서호미술관










[1] 팀 잉골드, 김현우 역, 『조응』 가망서사, 2024,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