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정 개인전 ‘Contrology’ 전시 비평글
비평 : 문현정

미디어 문법, 응고된 신체를 자각하기 위한 장으로서의 Contrology

구기정의 작업은 다층적 미디어에 대한 실험을 포괄한다. 그가 다매체를 소환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는 비단 기술의 실험을 넘어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그 기존의 작품은 고해상도 카메라, 특수 렌즈 등을 활용한 3D 렌더링 기반의 이미지와 영상, 그리고 설치를 통해 드러나며 기술의 매개로 가능해진 혼합적 현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화두에 오른 ‘증강된 자연’의 이미지는 그의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 미디어의 활용을 주된 층위로 만들고는 하였는데, 이는 작업을 시각적인 차원으로만 해석되도록 만드는 오류를 초래하고는 하였다. 그가 매체 실험을 지속하는 이유는 결코 이미지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술에 대한 관계적 성질에 대한 고찰을 포괄하는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번 개인전 «Contrology»에서 구기정은 영상과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를 활용한 세 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작품은 인간과 기술, 자연 사이의 관계적 맥락을 다루었던 지난 주제를 확장하여, 오늘날의 도심을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는 세상 속 미디어를 통해 흡수되는 정보는 밀려드는 홍수처럼 개인에게 자극으로 다가오며 인간과 매체를 분리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의구심과 인지하지 못한 채 손상되어가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자신이 신체로 체화(embodied)한 감각에 근거하여 현실을 마주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가 흡수한 현상은 비단 자신뿐만 아닌 동시대를 경험하는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미디어의 자극이 만연한 사회를 반추함과 더불어 매체의 일상화가 초래한 특정 ‘시각 문법’에 대한 해설을 동시에 도출하는 서술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반을 관통하는 구성은 개별의 작품을 ‘시간-기반(timebased)의 것’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미디어의 문법을 활용한다. 설치를 통해 드러나는 형태는 그가 기존의 전시에서 차용하던 사진의 변형 - 혹은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로서의 미디어 방법론을 넘어, 전시 전반을 연쇄적 경험이 가능한 장으로 변형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 시간성을 실험하고 있다. 세 점의 작품 ‹Contrology›(2022)와 ‹Coagulation›(2022), 그리고 ‹당신의 손가락은 누구의 명령을 수행합니까?›(2022)는 각각 퍼포먼스와 설치, 영상으로 드러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일련의 퀘스트(quest)를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제기하는 몇 가지의 의문이 전시 속에 산재되어 있음을 은유하는 것으로, 그는 다음과 같다:

1) 미디어는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변용하는가?
2) 미디어는 인간의 시각 인지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3) 미디어는 인간 보편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는가?

인간의 신체, 감각의 인지, 그리고 공통의 관점에 대한 질문은 곧 답이 정해지지 않은 여러 의문이 흩어져있는 장에서 관객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그는 사진과 영상을 필두로 한 광학 미디어(Optical media)에 더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포괄하는 최신의 기술을 적극 수용한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 작품에서 하나의 완성된 체계를 생성하는 협업자의 위치에 작가 자신과 기술 그 자체를 함께 병치함으로써, 기술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증강’된 예술 실험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매체의 실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가 던진 동시대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화하는 주체가 더 이상 인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미 도래한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인간과 기술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주체적으로 기술을 수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Contrology›(2022)는 매스 미디어(mass media)가 우리에게 주입하는 신체의 이미지, 그리고 이를 다시금 신체로 경험하는 인간의 현 상태에 대한 질문을 토대로 한다. 작품은 미디어가 선전하는 자극적인 신체의 모습과, 미디어 기기를 통한 경험이 초래한 경직되고 어긋난 인간의 신체를 동시에 비판하며 ‘이미지의 불균형’과 간극을 퍼포먼스로 구현하고 있다. 이는 관객에게 강화된 시각 자극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면 속의 대상에 자신의 신체를 이입하여 직접 몸을 움직일 것을 촉구하는 선전의 의도를 담고 있다. 작품은 디지털이 만연한 세상에 위치한 인간, 그리고 디지털이 우리의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포괄적 질문을 관객의 신체로 다시 회귀하도록 만드는 일련의 장치를 형성한다.

‘응고’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Coagulation›(2022)는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각적인 인지 구조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영상에 등장하는 자연은 고해상도 카메라, 매크로 렌즈, 3D기술을 통해 실재보다 더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증강된 모습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의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현대인이 낯익다고 느끼는 특정 ‘시각의 문법’이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를 반증하듯, 관객은 바닥에 펼쳐진 실제 잔디를 직접 밟고 그 위에 놓인 반원의 펜스를 신체로 체험하며 증강된 이미지를 감상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구축된 몰입 환경 속 자신의 신체를 다시 마주하도록 만들고, 본래적 이미지가 관념을 자극하는 방식과 그로 인한 자연의 시각 경험을 되돌아보게 만듦으로써 지금 이 시대를 둘러싼 환경을 재인식하도록 유도한다.

‹당신의 손가락은 누구의 명령을 수행합니까?›(2022)는 인공지능을 적극 개입해 작품의 화자로 만든다. 작가를 인터뷰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에서 사실 질문에 대답한 서술자는 작가가 아닌 인공지능이다. 작가는 그것을 대신 발화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기술의 언어를 대리하는 작품은, 그것이 작가의 언어가 아님을 관객이 알아차리는 순간 언캐니(uncanny)한 감정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다. 작품은 현 시대의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와, 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며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작품이 이끄는 일련의 순서는 우리로 하여금 스크린을 마주하고 - 신체를 움직이고 - 인지 체계를 되돌아봄으로써, 일종의 시각 - 몸 - 정신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시스템을 형성한다. 그 흐름의 결과는 다시 원론으로 회귀하여 미디어 시대 안에 어느새 위치한 우리 자신의 모습과, 그로 인해 굽어진 신체, 혼재된 정신을 가지게 된 인간 근원에 대한 자각이다. 자연의 단면을 닮은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실로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시각 체계와 몸에 남기고 간 일종의 ‘디지털 문법’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