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Beattitude

3D로 빚어낸 불확실성의 세계
글 : 구기정

Visual Portfolio

‹유명한 풍경Famous Scene›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유명한 풍경›은 기술에 압도되어 빠르게 바뀌는 풍경을 포착해 다양한 매체의 혼합으로 표현하면서 복잡해지는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 설치 작업입니다. 지난 2021년 9월부터 12월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융복합 페스티벌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를 위해 제작했답니다.


작업을 하게 된 계기와 그 콘셉트가 궁금해요.

평소 디스토피아적 내용을 다룬 사이버 펑크 소설이나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기계화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깊었어요. 디스토피아 이야기에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곤 하죠. 극 중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무력을 행사하며 인간을 지배한다는 묘사는 기계의 선택이라고 보기엔 꽤 비효율적인 면이 있어서 현실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비록 기계에 지배당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현재 특정 분야에서는 과학 기술에 강한 신뢰를 보내고 의존하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는데요. 손쉽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인간과 기술의 이런 상호보완적 관계는 계속될 거라 생각해요. 반면 모호하고 불확실한 정보에는 점점 익숙하지 않답니다.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얻어낼 수 있어서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스스로 견뎌내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탓이겠지요.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해왔어요. 많은 분이 이미 이론적으로 다뤄온 주제인 만큼 조금 더 실천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모호함에 대한 문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오늘날 너무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요.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연출된 환경 속에서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가는 방식의 작품이 되길 바라며 이번 작업을 기획했어요.



작업에서 주목할 지점은 무엇일까요?

관람자가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설치 이미지를 관람하고 실제-가상 정보의 정체를 알아가며 몰입된 체험을 할 수 있는 점이 중요해요. 오늘날 볼 수 있는 많은 디지털 이미지는 디지털 기술로 만드는 과정을 숨기기 위해서 특정한 디지털화 과정을 거쳐요. 저는 이번 작업의 이미지를 제작할 때 나타난 기술적 특징을 조금 더 극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반복doubling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노이즈 감소noise reduction, 범프 대응bump mapping 같은 효과를 활용해 이미지가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도록 제작했습니다. 이런 이미지가 지니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효과를 통해 관람자가 더 오랫동안 이미지를 관찰하고, 그 사실성을 의심하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연출했어요. 실제-가상 물질(흙과 나뭇가지-디지털 사진)과 정적-동적 이미지(프린트한 스틸 이미지-모니터에서 상영하는 영상)로 만든 환경에서 관람자가 명상적인 태도로 풍경을 바라보며 다양한 관점을 체험하는 지점은 작업을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손에 잡히는 실물과 모니터를 함께 놓을 때 경계가 만들어지는데요.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궁금해요.

경계를 적정선 내에 두는 게 중요했어요. 경계선 사이에 대하여 사유하는 것이 중요한데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너무 뚜렷하면 무척 쉽게 결론이 날 테고, 뚜렷하지 않다면 생각 자체를 포기해버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죠.



3D 작업에서는 질감 표현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실물을 디지털로 옮길 때 질감을 표현하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주로 변위 대응displacement mapping 기술과 사진 이미지를 통해 사실적인 질감을 만들고 있어요. 변위 대응은 평면 이미지의 밝은 부분은 튀어나오게 하고, 어두운 부분은 들어가도록 계산해서 입체적인 높낮이를 만드는 기술인데요. 사진 이미지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사실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답니다. 저는 매끄럽고 광이 나는 질감을 선호해요. 질 좋은 장비나 촬영 방식(매크로 렌즈, 인공조명, 장노출 촬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적인 특징을 살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작업하면서 겪는 신기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작업을 공개했을 때 인터넷으로 접하는 반응이 항상 신기해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독려 혹은 신랄한 비판을 받곤 하는데요. 이런 반응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반갑고, 반가우면서도 아쉽습니다.

요즘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스테레오타입을 생각해보셨나요?

스테레오타입이 한번 형성되면 다수가 그 관점을 지지하는 보편성에 취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벗어나는 노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최대한 스테레오타입에서 거리를 두려고 해요.



작가님의 작업이 기대고 있는 이 시대의 스테레오타입, 작가님의 작업을 유효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이 경직된 자세로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며 평평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어요. 이런 사실은 제가 조금 더 다양한 계층의 이미지를 다루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진정성과 호소력을 갖춘 작업의 형식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떤 작품에 힘을 실을 때 발전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는지 여하에 따라 사회적인 설득력이 부여되는 것 아닐까요? 인간이 기술에 압도되는 상황을 자주 겪을수록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이 갖는 의미 또한 커진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어려운 점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해요.

수월하게 작업을 해낸 적이 없어서 극복의 경험을 공유해드리기는 쉽지 않네요. 하지만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 그 어려움 자체를 올곧게 받아들이면 좀 더 현실에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경우에는 너무 희망적인 환경을 생각하다보면 현실과의 괴리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더군요. 그래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서 억지 결론을 끌어내곤 합니다. 매 순간 어렵게 다가오는 요소가 사실 단어만 같을 뿐 완전히 새롭게 접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매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면 작업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백 가지를 종이에 적어 내려간 적이 있어요. 몇몇은 억지로 짜냈지만, 결국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실력을 쌓고 한 가지 분야에 통달해서 자신을 알리는 게 좋은 기회를 얻기에는 더 쉬웠지만, 시대와 기준은 항상 변해요. 저는 명확하고 꺾이지 않는 한 가지를 설정하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수많은 요소가 잘 부합되는 조건을 찾아 제게 알맞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답니다.


Artist

구기정은 실재하는 풍경을 3D 렌더링 기반의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하고, 이를 물리적 공간에 영상 및 설치 작업으로 구현하면서 인간과 기계, 자연의 관계를 살펴왔다. 디지털 기술로 가공한 실제 풍경은 증강된 현실의 비실재적 자연과 접목되어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 위치한 모호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아르코미술관, 2021),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일민미술관, 2021), «정원 만들기GARDENING»(피크닉, 2021)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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